프롤로그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준공 건축물 사이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작은 균열이었다. 2015년 체코 프라하로 건너가 현지설계를 6개월동안 진행한 넥센타이어 체코공장 프로젝트이다. 체코 건축가 타우스1는 아주 단호했다. 공장 한 가운데 위치한 휴게실은 노동자가 ‘햇빛도 쐬지 못하는’ ‘생산성’만 고려한 계획이기 때문에 체코에서 짓지 못한다고 “NO”라고 분명히 말했다. 국내에서 클라이언트와 오랫동안 협의해 만든 마스터플랜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회의실에는 적막이 흘렀지만 이윽고 나는 그 균열 사이에서 속으로 곱씹었다. “실패를 경험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축의 원형을 목격한 것에 가깝다.”
그때부터 길러진 것은 상실의 감각, 이미 가진 것에서 비롯되는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심의 감각이다. 왜 한국과 체코라는 국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내부 요인은 그대로인데, 건축물안에서 경험하는 숨 쉬고, 보고, 밥 먹고, 일 하는 기준은 다른 것일까. 세상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들은 바깥에 놓인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의 출발점으로 연극을 하는 친구들과 종로 혜화문 옆에 작은 예술서점을 열었다. 서점 운영을 계기로 만난 사람들이 내뱉는 언어, 즉 스스로가 되어 이야기하는 것들은 내 좁은 세계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달라 처음에는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운이 좋게 공연장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500석 규모의 공연장 리모델링, 스포츠콤플렉스 설계를 하게 되었다. 그 계기로 공연예술을 통해 건축에서 다루지 않는 그 바깥의 삶이 무수히 존재함을 깨달았다. 내게 싹트기 시작한 궁금증은 공연예술 관련 전반을 향해 있었다. 왜냐하면 건축가가 해야할 일은 극장이라는 경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극장과 그 바깥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